미국 전기자동차업체 테슬라가 삼성전자에 차세대 자율주행칩 생산을 맡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가 칩 설계 능력과 공정 기술, 가격 대비 성능 등을 앞세워 테슬라 자율주행칩 수주전에서 대만 TSMC를 제친 것이다. 반도체업계에선 “삼성이 TSMC를 추격할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테슬라의 2세대 자율주행칩 HW4.0 위탁생산을 수주한 것으로 보인다. HW4.0은 내년 2분기부터 테슬라 전기차에 장착돼 자율주행 관련 데이터 처리를 담당하게 될 핵심 반도체다. “자율주행 기능이 불완전하다”는 공격을 받고 있는 테슬라가 명운을 걸고 있는 칩이다. 계약에 정통한 복수의 관계자는 “테슬라와 삼성전자가 올초부터 수차례 칩 설계를 협의하고 시제품을 주고받았다”며 “테슬라가 삼성전자에 생산을 맡기기로 잠정적으로 결정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경기 화성 등에 있는 7㎚(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공정에서 테슬라의 차세대 자율주행칩을 생산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7㎚는 5㎚처럼 최신 생산라인은 아니지만 수율(생산품 대비 양품 비율)과 생산 칩 성능 등 경제성과 기능 면에서 모두 검증된 ‘안정적인 생산 공정’으로 평가된다. 업계 관계자는 “차량용 부품은 자동차의 사고 가능성을 줄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테슬라도 반도체 칩의 안정성을 고려해 5㎚가 아니라 7㎚ 공정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수주 금액은 현시점에서 추산하기 어렵다. 하지만 테슬라가 ‘완전자율주행(FSD)’이라고 이름 붙인 기능을 전기차에 확대 적용하고 있고, 내년엔 120만 대 선주문받은 전기 픽업트럭 사이버트럭을 출시할 계획이어서 HW4.0 수요는 꾸준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업계에선 테슬라가 TSMC가 아니라 삼성전자를 낙점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테슬라는 TSMC와도 협의했지만 삼성전자가 △칩 설계 지원 △가격 대비 성능 △장기적인 협력 가능성 등에서 TSMC보다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리콘밸리=황정수 특파원 hjs@hankyung.com